잔잔한 화성학

11부 · 42

리하모니제이션 프로젝트 - 한 멜로디, 여러 화성

마지막 강입니다. 이 강은 새 이론을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22강부터 41강까지 쌓은 것을 한데 모으는 총정리 프로젝트예요. 한 멜로디를 놓고, 지금까지 배운 기법들로 직접 코드를 다시 입혀 봅니다. 이렇게 이미 있는 화성을 다른 코드로 갈아입히는 일을 리하모니제이션이라고 해요. 이 강의 모든 예시는 다장조(C major) 기준이고, 코드 이름 옆에는 로마 숫자를 함께 답니다.

다시 꺼낸 8마디 멜로디

재료는 새로 만들지 않습니다. 31강에서 쓴 바로 그 여덟 마디 멜로디를 다시 꺼내요. 계이름으로 미 - 솔 - 라 - 솔 - 파 - 미 - 레 - 도, 앞에서 완만한 아치를 그리며 까지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와 에 내려앉는 멜로디입니다. 먼저 멜로디만 다시 들어 보세요.

31강에서 이 멜로디에 처음 입혔던 옷은 담백한 3화음 C - C - F - C - F - Am - G - C(I - I - IV - I - IV - vi - V - I)였습니다. 이걸 출발점으로 삼아요. 익숙한 이 화성을 먼저 귀에 담아 두면, 아래에서 코드를 바꿀 때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또렷하게 들립니다.

CCFCFAmGC

이제 이 하나의 멜로디에 두 벌의 새 옷을 지어 입혀 볼 거예요. 하나는 원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원형 유지형, 다른 하나는 색을 적극 더한 적극 변형형. 두 버전 모두 음표는 하나도 바꾸지 않습니다. 오직 밑에 깔리는 코드만 달라져요.

리하모니제이션 전에 멜로디부터

코드를 바꾸기 전에, 멜로디를 먼저 뜯어봅니다. 28강에서 봤듯 한 음은 여러 코드의 코드톤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코드를 고를 여지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 는 C의 3음이면서, Am의 5음이고, Em의 근음이기도 합니다. 이 한 음만으로도 C, Am, Em 중 어느 코드든 얹을 수 있어요.
  • 는 F의 3음, Dm의 5음, Am의 근음입니다.
  • 는 C의 근음, Am의 3음, F의 5음이에요.

한 음이 여러 코드에 얹힐 수 있으니, 리하모니제이션이란 결국 그 여러 후보 중에서 고르는 일입니다. 방향을 잡을 땐 멜로디의 생김새를 봅니다. 이 멜로디는 앞에서 까지 아치를 그리며 열려 올라갔다가 로 내려앉아 끝나요. 그러니 앞은 자유롭게 색을 넣어 열어 두고, 끝은 안정적으로 맺는다는 방향이 자연스럽습니다.

원형 유지형 - 담백하게

첫 번째는 원형 유지형입니다. 원래 틀을 존중하면서, 크게 튀지 않는 기법만 씁니다. 다이아토닉 대리(같은 조 안의 코드로 바꿔치기)와 자리바꿈(11강), 그리고 세컨더리 도미넌트를 딱 하나(32강)만 넣어요. 절제해서 담백하게 가는 버전입니다.

CC7FEmDmAmG/BC
마디멜로디원래새 코드기법왜 맞는가
1CC (I)유지미는 C의 3음
2CC7 (V7/IV)세컨더리 도미넌트(하나)솔은 C7의 5음, 다음 F를 겨눔
3FF (IV)타깃라는 F의 3음
4CEm (iii)다이아토닉 대리솔은 Em의 3음(C와 미·솔 공유)
5FDm (ii)다이아토닉 대리파는 Dm의 3음(F와 파·라 공유)
6AmAm (vi)유지미는 Am의 5음
7GG/B (V (1전위))자리바꿈레는 G의 5음, 베이스 시로 매끄럽게
8CC (I)유지도는 C의 근음

바뀐 자리를 짚어 봅시다. 2마디의 C7은 뒤따르는 F를 겨누는 세컨더리 도미넌트(V7/IV)예요. 4마디는 C를 Em으로, 5마디는 F를 Dm으로 바꾼 다이아토닉 대리인데, 둘 다 원래 코드와 음을 나눠 가져서 멜로디가 그대로 코드톤으로 앉습니다. 7마디는 G를 G/B로 자리바꿈해 베이스가 매끄럽게 시로 내려오고요. 큰 사건 없이 결이 고와지는 정도라, 벌스나 곡의 친밀한 대목에 잘 어울립니다.

적극 변형형 - 화사하게

두 번째는 적극 변형형입니다. 원형 유지형의 재료에 더해, 색이 확 도는 기법들을 얹어요. 7화음 색(19강), 모달 인터체인지(36강), 그리고 백도어 도미넌트(40강)까지 총동원합니다. 같은 멜로디가 훨씬 화사하고 두툼하게 울려요.

Cmaj7Em7Fmaj7E♭FmAm7B♭7C6
마디멜로디원래새 코드기법왜 맞는가
1CCmaj7 (Imaj7)7화음 색미는 3음
2CEm7 (iii7)다이아토닉 대리 + 7화음솔은 3음
3FFmaj7 (IVmaj7)7화음 색라는 3음
4CE♭ (♭III)모달 인터체인지솔은 E♭의 3음(평행 단조 차용)
5FFm (iv)모달 인터체인지(마이너 서브도미넌트)파는 Fm의 근음
6AmAm7 (vi7)7화음 색미는 Am7의 5음
7GB♭7 (♭VII7)백도어 도미넌트레는 B♭7의 3음, 뒷문으로 C 해결
8CC6 (I6)6코드 마무리도는 근음

가장 눈에 띄는 두 자리를 볼까요. 4마디의 E♭(♭III)은 평행 단조에서 빌려 온 모달 인터체인지 코드입니다. 멜로디 솔이 E♭의 3음으로 안착하면서, 밝던 자리에 살짝 그늘이 지죠. 7마디의 B♭7(♭VII7) 백도어 도미넌트예요. 앞문(V) 대신 뒷문으로 슬쩍 C에 들어오는, 따뜻하고 의외인 색입니다. 나머지 마디는 3화음을 7화음으로 부풀려 전체가 두툼해져요. 이런 화사함은 코러스나 곡의 절정에 어울립니다.

끝을 조금 더 꾸미고 싶다면, 마지막 를 잡은 채 속을 움직이는 라인 클리셰(35강)로 마무리하는 옵션도 있어요. 맨 위 도는 그대로 두고 안쪽 음이 도 - 시 - 시♭ - 라로 반음씩 내려가며 C - Cmaj7 - C7 - C6을 그립니다. 끝맺음에 은근한 움직임이 생겨요.

CCmaj7C7C6

같은 멜로디, 세 벌의 옷

이제 셋을 나란히 들어 봅시다. 멜로디는 세 번 다 똑같습니다. 음표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달라진 건 오직 밑에 깔린 코드뿐입니다. 31강에서 ‘하나의 멜로디, 여러 옷’이라고 한 그 주제를, 여기서 직접 세 벌로 완성하는 셈이에요.

CCFCFAmGC
CC7FEmDmAmG/BC
Cmaj7Em7Fmaj7E♭FmAm7B♭7C6
  • 원래 화성화: 3화음만으로 담백하고 소박합니다.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옷이에요.
  • 원형 유지형: 대리와 세컨더리 도미넌트 하나로 결이 고와졌지만, 여전히 차분합니다.
  • 적극 변형형: 모달 인터체인지와 백도어, 7화음으로 화사하고 입체적이에요.

어느 쪽을 고를까 - 판단 기준

두 리하모니제이션 중 무엇이 ‘정답’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곡과 자리에 맞는 선택이 있을 뿐이에요. 고를 때 스스로에게 던질 네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1. 멜로디와 부딪히지 않나? 새로 넣은 코드에서, 그 순간 멜로디 음이 코드톤이거나 무난한 텐션인지 확인합니다(28강). 이게 첫 관문이에요. 위 두 표의 ‘왜 맞는가’ 칸이 매 마디 이걸 점검한 기록입니다.
  2. 분위기와 섹션에 맞나? 담백한 원형 유지형은 벌스에, 화사한 적극 변형형은 코러스에 어울립니다. 같은 멜로디라도 어느 자리에 놓이느냐로 옷이 갈려요.
  3. 과하지 않나? 대리를 많이 넣을수록 색은 짙어지지만, 지나치면 중심이 흐려지고 소리가 탁해집니다. 절제가 곧 실력이에요. 한 마디만 바꿔도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4. 배운 기법 안에서 골랐나? 여기서 쓴 대리 · 자리바꿈 · 세컨더리 도미넌트 · 모달 인터체인지 · 백도어 · 라인 클리셰는 전부 22강부터 41강 사이에서 익힌 것들입니다. 근거를 아는 기법으로 골라야, 왜 그렇게 들리는지 설명할 수 있어요.

정리 - 42강의 마침

  • 한 멜로디, 여러 화성: 31강의 여덟 마디 멜로디를 음표 하나 바꾸지 않고, 담백한 원형 유지형과 화사한 적극 변형형 두 벌로 다시 입혔다.
  • 총동원: 다이아토닉 대리 · 자리바꿈 · 세컨더리 도미넌트 · 모달 인터체인지 · 백도어 · 7화음 · 라인 클리셰까지, 22강부터 41강에서 배운 기능 · 대리 · 모달 · 반음계 기법을 한 곡에 모아 썼다.
  • 판단 기준: 멜로디와 부딪히지 않나, 분위기 · 섹션에 맞나, 과하지 않나, 배운 기법 안에서 골랐나. 이 넷으로 리하모니제이션을 고른다.

여기까지가 42강의 여정입니다. 오선 위 음표 하나를 읽던 1강에서 시작해, 이제는 한 멜로디를 담백하게도 화사하게도 직접 입힐 수 있게 됐어요. 화성학은 외우는 규칙이 아니라 고르는 눈이라는 걸, 이 마지막 프로젝트가 보여 줍니다. 배운 기법들을 좋아하는 곡에 하나씩 얹어 보며, 이 눈을 계속 키워 가세요.